피에로는 지난 저녁
늦은 잠에서 깨어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합니다.
고양이 세수에
아침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가방을 들고는 현관을 빠져나와
지하철역을 향합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횡단보도의 빨간 등은 바뀔 줄 모르는지
피에로는 지하철 시간에 늦을까 봐
조바심이 납니다.
뛰듯이 바쁜 걸음으로
겨우 지하철에 올라 탄 피에로는
빈자리에 얼른 안고서야 안도감에
긴장했던 맘이 풀어졌던지
부족했던 잠이 쏟아집니다.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는 하차한 피에로는
지하철역을 벗어나 산책하듯 느긋하게
회사를 향합니다.
보기 흉한 모습을 연출했겠지만
지하철에서의 아침 졸음은
언제나 출근길에 상쾌한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출근길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나야 하는데
가을을 맞이해서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린 은행나무 열매는
아침 출근길의 또 다른
복병입니다.
지난 태풍에 벌써부터
길바닥에 떨어진 열매는 이미
바닥에서 뭉개져 특유의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노랗게 잘 익은 열매는 약한 바람에도
우박 떨어지듯 떨어집니다.
출근길에 최대한
열매를 밟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 피에로는 두세 번
열매를 밟았으니 오늘도 실패입니다.
신발에 밟힌 흔적을
최대한 제거한 뒤에야
실내로 들어가면서 치열(?)했던
아침 출근전쟁을
마무리합니다.
흔한 거리의 은행나무와
또 가을이면 열리는 은행 열매를
매 해 접하면서도 짜증만 냈지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기에
오늘 피에로는 맘먹고
인터넷 검색창에 은행나무를
뒤적입니다.
놀라운 사실인데요.
은행나무는 세계에 1과
1속 1종밖에 없고 빙하기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화석과 같은
유물 식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답니다.
은행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이며
그 열매 은행은 종자가
은(銀)처럼 희고 열매는
살구(杏) 모양 같다고 하여
붙인 중국 이름이랍니다.
중국에서 처음에는
잎이 오리발 같다 하여
입각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또한 결실하는 때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므로
아버지가 심은 나무가 손자의 대에 가서
열매를 맺는다고 공손수라고도
이름을 붙였답니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의 수목 중에서
가장 수명이 긴 나무 중의 하나로
천년이 넘는 것이 여럿 있어서
오랜 세월을 갖은 풍상을 겪어온 만큼
이에 얽힌 신비와 희비가 엇갈린 전설과
민속이 수없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은행나무 11주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은행나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1,400년이고
크기도 동양 제일로
마의태자가 심었다고도 하고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싹튼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 나무는 세종대왕이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하실 만큼
명목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길흉사가 있을 때면
미리 밤마다 윙윙 소리를 내
운다고 한답니다.
8.15 직전에는 2개월 동안 울었고
6.25 동란 무렵에는 50일간
그리고 4.19와 5.16 때도
울었다고 하며
고종께서 승하하셨을 때는
큰 가지가 칼로 자른 듯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댔더니
톱 자리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 번개가 쳐서 나무 베기를
포기했다는 신기한 전설과 함께
그 톱 자리가 아직도
남아있답니다.
은행나무는 주로
천심{天心}을 하강시키는
신목(神木)으로 여겼는데
주로 관가 뜰에 심었답니다.
그리하여 백성의 억울함을
보살피지 않고 악정을 베푸는
관원을 응징하는 나무이기도 했답니다.
또 하나의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강화도 전등사의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고 울어대는 해에는
반드시 국난이 일어났는데
병인년의
프랑스 함대 강화 침공 때 울었고
운양호 포격사건 때도 울었으며
강화 강제 수교 조약이 맺어지던 해도
밤새워 울었답니다.
그밖에도 은행나무에 얽힌 전설은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습니다.
은행은 식용으로서
옛날에는 경사스러운 날이나
제수용으로 사용한 오랜 전통이 있으며
또한 귀한 구황 식량이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날것으로 먹으면
중독으로 죽고 익혀서 먹으면
보약이 된다고 했는데
영조 때 유중림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증보한 농서
‘증보산림경제’ 에는
어린아이가 많이 먹으면
까무러친다고 했고
굶었던 사람이 밥을 대신할 만큼
포식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적고 있어
은행의 독성을 경계했답니다.
민간으로서는
진해제로 이용한 민간약이 되기도 했고
오늘날에는 은행잎이
순환기계통의 약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답니다.
은행나무는 재질이 치밀하고
트지 않아서 예부터 가구재,
현판, 경판 등으로 귀히 쓰였으며
우리나라 소반 중에 으뜸이었던
행자목반상은 유명하며
귀한 민예품으로 남겨진 다식판을
만드는 데도 귀히 쓰였답니다.
은행잎은 단풍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책갈피에 넣어 두면 좀 벌레가
꼬이지 않아서 즐겨 이용했던
풍습도 있었답니다.
은행은 신선로에
빼지 못할 재료일 뿐 아니라
은행단자, 은행정과 등 전통음식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술안주용으로 꼬치에
끼워먹기도 하지요.^^
이렇게 은행나무에 대해서 알아본
피에로는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귀하게 쓰인
은행나무와 은행,
노란색으로 가을 단풍을 대표하는
고운 은행잎에...
어울리지 않는
그 특유의 악취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거리의 천덕꾸러기 은행나무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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