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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5~9호선별 가볼 곳

노량진 사육신공원에 오르다.

충절의 상징 사육신공원에 가보다.

 

 

피에로는 오늘 충절의 상징이며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조선시대 

충신들의 정신이 서려있는

노량진 사육신공원에 가 보았습니다.

 

 

사육신공원에 가기 위해 피에로는

9호선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

 

지하철 9호선 노들역 1번 출구로

올라와서 100미터쯤 직진하니

바로 사육신공원 입구가 나오네요.

 

노들역에서  사육신공원으로 오는

반대 방향으로는 노들나루공원이

자리하는데요. 이곳은

다음 기회에 포스팅하기로 할게요.

 

 

공원 안내도입니다.

 

약간의 언덕을 올라갑니다.

 

앞으로 사육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의절사가 보입니다.

 

사육신은

조선 세조 2년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삼문 ,

하위지, 박팽년이개, 유성원, 유응부

6분을 말합니다.

병자사화(丙子士禍)라고 하는

당시의 사건에서 이들 외에도

70여 명이 모반 혐의로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는군요..

 

사육신의 이러한 단종 복위 운동은

단종에 대한 충심과 함께, 왕권 강화를

꾀한 세조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이들은 대체로 집현전 출신의 유학자들로

문종의 즉위 이후 신권(臣權)을 중심으로

유교적 여론정치를 지향하였는데요.

 

 

이에 세조가 1455년 단종에게 양위를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르고

왕권의 확립을 꾀하자 이들은
단종을 복위시키고

관료 지배체제를

 실현하려 했다 합니다.

 

 이들의 모반을 미리 알게 된

세조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들을 그냥 둘 수 없었겠지요.

 

계획을 주도한

성삼문, 이개, 하위지, 김문기

유응부 등은 군기감 앞에서

 조정의 신료들이 모두 입회한 상태에서

수레로 찢겨 죽임을 당하는

거열형을 당했고

유성원은 잡히기 전에

집에서 아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이들의 친자식들도

모두 목을 매어 죽이는

교형에 처해졌으며 집안의 여성들은

노비가 되었고

 가산도 모두 몰수되었다 합니다.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한 성승, 박팽년,

유응부, 성삼문, 이개 등은

처형된 뒤에

한강 기슭 노량진에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정조 때인 1782년 이곳에는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신도비(神道碑) 세워졌고

1955년에는 신도비와 마주 보는 위치에

육각의 사육 신비가 세워졌습니다.

1978년에는 묘역을 크게 넓히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不二門),

홍살문비각(碑閣) 등을

새로 지어 단장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성승의 묘가 훼손되어 전해지지 않아

원래 이곳에는

박팽년, 유응부, 성삼문,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나중에 유성원, 하위지의

가묘(假墓)가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성삼문 , 하위지, 박팽년,

이개, 유성원, 유응부 6분을 특별히

사육신이라고 기리게 된 것은 이른바

생육신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지는

남효온이 육신 전(六臣傳)에서

이들 여섯 명의 행적을 소상히 적어

후세에 남긴 데에서 비롯되었다네요.

 

 

이후 사육신은 충절(忠節)을 상징하는

인물로 숭배되었고, 사대부들은

그들의 신원을 조정에 요구하였다 합니다.

그 결과 성종 때에는

그들의 후손도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금고 된 것을 풀어 주었으며,

숙종 때에는 사육신 6명의 관작을

회복시켰다 합니다.

  

 

한편,

1977년 김문기의 후손인

김녕(金寧) 김 씨(金氏)  문중을 중심으로

유응부 대신 김문기가

사육신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는

김문기의 공적도 인정되어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의 가묘도 함께

조성하도록 결정했다 하네요.

 

그래서 사육신 묘역에는

김문기를 포함해

모두 일곱 분의 무덤과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역사는 산자의 기록이라 했던가요?

사육신이 6분이던 7분이던

상징적 의미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정면에 모셔진 위패가 보이고요.

우측으로는 신도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사육신 역사관입니다.

1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교육체험관과 영상실이 있고

2층은 상설전시실로 되어서

사육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와서 뒤로 돌아가니

사색의 공간이 나옵니다.

이 곳은 등나무 아래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좋았고요.

덥지 말라고 아래로 냉기를 내려주는

장치가 되어있더군요.

냉각 안개라 할까요?^^

시원해서 더 좋네요.

 

사색의 공간 앞으로 여의도가 펼쳐집니다.

정면에 63 빌딩이 가깝게 보이고

그 아래로 노량진역에서 용산역을 잇는

철교가 가로질러 있어서

지하철과 열차가 심심치 않게 다니네요.

야경도 멋질 듯합니다..

 

 

저탄소 태양광 발전시설

상록수 파빌리온입니다..

요즘 미세먼지에 하루도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요즘 저탄소 정책으로

태양광 발전시설을 많이

건설하고 있더군요.

이곳도 멋지게 태양광 시설을

만들어 놓았네요.

 

그 밖에도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니

인근 지역 분들 이용하시기 편리한

운동시설과 편의시설 등이

잘 꾸며져 있네요.

 

처음 올라온 곳으로 공원을 내려온

피에로는 서울 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1호선 노량진역으로 향합니다.

 

오래전에 이곳을 지날 때면

3 재수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그때보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등에 가방을 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네요.^^

 

사육신에 관한 역사이야기는

책과 TV를 통해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하러

들러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