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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5~9호선별 가볼 곳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관 관람기

피에로는 오늘 약속이 있어서

광화문역에 나갔다가

색다른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세종이야기, 충무공이야기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 아래로 지하 전시장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호기심에 내려가 봤더니

광화문광장 아래로

훌륭한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종이야기 전시장입니다.

세종대왕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들 너무나 잘 아실 텐데요.

 

간단히 알아보면 세종

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었죠.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습니다.

 

그러나 양녕대군의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련의 행동과 사건들로 인해서

태종의 선위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고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여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태종에게는 양녕, 효령,

충녕 등 세 대군이 있었고

또한 양녕대군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기에

새로이 세자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태종의 마음은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에 독실한

셋째아들 충녕대군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세자 책봉은

태종의 뜻에 따라 충녕대군이 되었고

 

그가 왕위에 올랐으니

그 사람이 바로 세종입니다.

 

세종대왕의 빼어난 업적을

열거하자면

 

첫째 조선 유교정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는 것입니다.

 

세종 때는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를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으며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의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둘째는 너무나도 위대한

훈민정음의 창제입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이 남긴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유산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뛰어난 학자들의 협력을 받아

우리 민족의 문자를 창제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입니다.

 

천문대와

천문관측기계 방면에서의 발전이

이러한 측면의 하나로 꼽힙니다.

 

농경시대의 천문 및 기상 관측은

한 해 농사를 결정 짖는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러했기에

장영실 등의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서

자격루, 앙부일구, 혼천의 등의

뛰어난 장치들을 발명했으니

 

이는 실로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이라 할 만 하겠죠.

 

세종이야기관을 나오면서

바로 충무공 이야기관으로 이어집니다.

 

충무공 이순신

이순신 장군이 누구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분은 없겠죠?

 

충무공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전란의 역사에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한 명장으로

 

모함과 박해의 온갖 역경 속에서

일관된 그의 우국 지성과

고결한 인품은

가히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그는 주로 문관 벼슬을 이어온

양반계급의 집안이었던

아버지 이정(李貞)

어머니 초계변씨(草溪卞氏)의

사이에서

 

154538일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 선조 임금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입니다.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

시호는 충무공으로

22세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해

1576년 봄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 후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조련했고요.

 

1592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옥포 앞바다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한산도대첩에서 적선을

크게 격퇴하여

왜군의 전의를 상실시켰습니다.

 

1595년에는 모함으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으나

곧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고,

 

13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대첩을 이끌어

왜군의 서해 진출을 저지했습니다.

 

그는 노량해전에서 왼쪽 가슴에

탄환을 맞아 전사했습니다.

 

이렇게 광화문광장 지하를

한 바퀴 돌아본 후

광장으로 올라온 피에로는

 

광장에 세워져 있는

두 분의 동상을 둘러봅니다.

 

분수에서 내뿜는 물줄기로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에는

좀 부족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낮추는 데는

도움이 되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들 몇몇이 여행 중인지

가이드의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하철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어찌나 예쁘던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곳은 오전 10시30부터

오후 730분까지 관람이 가능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관람료는 무료랍니다.

많이 찾아와서

위대한 위인 두 분의 업적을

확인해 보세요.